안전한 선택만 쌓이고 있다면,
살아있는 게 아닐지 모른다
한 달째 별 사건이 없다. 큰 결정도, 거절할 일도, 마음이 미리 두근거릴 만한 약속도 없는 일요일 오후. 창밖 햇살은 부드럽고, 오늘의 할 일은 이미 끝났다. 그런데 어쩐지 가슴 한쪽이 가라앉아 있다.
두려운 일이 없는데 마음이 안 가벼운 게 이상했다. 다 괜찮은데 다 괜찮지가 않았다. 안전한 건 분명한데 살아있는 느낌이 옅어졌다.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에 평화가 오는 줄 알았는데, 그곳에는 평화 대신 흐릿함이 들어와 있었다.
돌아보면 최근 몇 달 동안 거절한 모임이 늘었다. 새 프로젝트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미뤘다. 낯선 길은 한두 번 가본 길로 돌렸고, 평소 안 가던 가게는 다음 기회로 미뤘다. 사소해서 거절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던 작은 거절들이, 어느새 한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두려움을 줄이는 가장 빠른 방법은 두려울 만한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두려움이 사라진 게 아니라, 두려움이 닿을 자리를 미리 좁혀둔 것이다.
편안한 만큼 세계는 조금씩 작아졌다. 안 떨리는 만큼 안 살아 있었다. 그게 안전인 줄 알았다.
면접 전날 밤, 새 도시에 도착한 첫날, 누군가에게 진심을 꺼내기 직전. 그런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공통점이 있다. 심장이 평소보다 빨리 뛴다. 가만히 있어도 어딘가가 미세하게 움직인다.
그 떨림은 위험을 피하라는 경고만이 아니다. 몸은 무관심한 일에는 떨지 않는다. 떨린다는 건 거기에 무언가 중요한 게 놓여 있다는 표시등이다. 가치가 걸려 있을 때, 의미가 결정될 때, 아직 결과를 알 수 없을 때 — 몸은 그 자리에 표시를 켠다.
두려움은 정반대 방향이 아니라, 필요한 변화의 시작점을 가리키는 신호다.
'이거 망하면 어떡하지'와 '이게 망할 확률이 얼마지'는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질문이다. 앞쪽은 두려운 나의 감정이고, 뒤쪽은 두려운 상황의 사실이다. 둘을 한 덩어리로 두면 회피만 남고, 분리해서 보면 어디선가 행동지가 생긴다.
실제 일어날 확률은 얼마인가. 최악의 경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지금 가진 자원은 무엇인가. — 같은 질문을 적어 내려가는 동안, 떨림은 사라지지 않지만 손에 잡히는 모양이 된다.
분리하고 나서야 보인다. 진짜 무서웠던 건 그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었다는 걸. 그러는 동안 통제권은 슬며시 감정에서 판단으로 넘어와 있다.
한동안 안전한 선택만 했더니, 어느 날 거울 속 표정이 낯설었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흐릿하다. 큰 사고도, 큰 기쁨도 없이 하루가 저물었다. 무사함이 쌓이고 있는데 어딘가 비어 있다.
그제야 알았다. 두려움이 없는 삶은 평온이 아니라 정지에 가까웠다. 무언가에 떨리지 않는다는 건 무언가에 닿지 않고 있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에 다른 살아있음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안전한 선택만 쌓이고 있다면, 살아있는 게 아닐지 모른다. 두려움이 없는 게 두려워질 때, 그건 어쩌면 가장 살아있는 신호다.
번지점프 같은 자극을 말하는 게 아니다. 미루던 전화 한 통, 안 꺼낸 한마디, 안 가본 골목 하나. 그 정도의 작은 떨림으로 충분하다. 일부러 무서운 일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떨리고 있는 자리에 한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떨리는 곳을 알아채면 그쪽으로 한 발 다가가 본다. 그게 매번 정답은 아니어도, 적어도 거기에는 살아있는 무언가가 걸려 있다. 안 떨리는 자리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게 한 걸음씩 옮기다 보면, 두려움은 줄어드는 게 아니라 같이 걷는다.
변화를 결심한 다음 날도 여전히 떨린다. 떨림이 사라질 때를 기다리면 영영 움직이지 못한다. 그건 떨림이 결심으로 사라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떨림은 싸워서 이기는 적이 아니라, 결정과 함께 따라오는 동반자에 가깝다.
두려움을 없애려는 사람보다, 두려움과 함께 걷는 법을 익힌 사람이 가장 멀리 간다. 불완전한 상태로 시작하는 용기가 변화의 첫 걸음이다.
그러니 어느 날, 두려움이 없어서 안심하는 게 아니라 두려움이 있어서 안심하는 날이 온다. 떨리는 게 있다는 건, 아직 닿고 싶은 무엇이 남아 있다는 뜻이라는 걸 알게 되는 날이다.
두려운 게 없는 날을 평화라고 착각하지 않기. 떨릴 일을 미리 줄이는 것을 안전이라 부르지 않기. 떨리는 곳이 있다는 건 위험이 가까이 왔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닿고 싶은 무엇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떨림을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 그 자리를 알아채고, 한 걸음만 그쪽으로 옮긴다. 그게 오늘의 살아있음이고, 다음 며칠을 만들어가는 작은 결심이다.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에 자유가 오는 게 아니다. 두려움과 나란히 걸을 때 자유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