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술가가 존재하는가?
Essay · 댄스 철학
왜 예술가가
존재하는가?
왜 예술가가 존재하는가 — 예술가란 무엇인가
받아서 흘린다. 비울수록 채워진다.
Chapter One
왜 예술가가
존재하는가
살면서 인간은 자연스럽게 감정의 문을 닫는 방향으로 훈련된다. 감정에 휘둘리면 판단이 흐려지고, 실수가 늘고, 관계에서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생존 본능은 처음부터 감정을 닫는 연습을 시킨다.
어릴 때는 울고 싶을 때 울었다. 기쁘면 소리쳤다. 무서우면 매달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러지 못하게 된다. "왜 우는 거야." "그쯤은 참아야지." "어른이 됐잖아."
닫힌 문은 점점 두꺼워진다. 그렇게 살다 보면 — 살아있는데 살아있는 느낌이 없어진다.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자는데, 어느 날 문득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가, 아니면 살아남고 있는가.
예술가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 닫아버린 감정의 문을 대신 열어주는 사람이다.
Chapter One — continued
오랫동안 잠가뒀던 것
관객이 예술 앞에서 이유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건 슬퍼서가 아니다. 오랫동안 잠가뒀던 자기 안의 감정이 예술가를 통해 열려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재회의 눈물이다. 자신이 잊고 살았던 감정과 다시 만나는 순간이다.
예술이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닫아버린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대신 열어줄 누군가가 없다면 —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모른 채로 살아가게 된다.
민준은 서른여섯이었다. 회사에서 10년을 일했고, 그 사이에 뭔가가 조용히 사라졌다.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다. 그냥 매일 비슷했다.
그날은 동료의 강권으로 어쩔 수 없이 공연장에 갔다. 춤 같은 건 관심이 없었다. 앉아서 적당히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무대가 시작됐다. 음악이 들어왔다. 조명이 바뀌고, 누군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준은 처음엔 멀리서 구경했다. 기술적으로 훌륭하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 자신이 무대를 보고 있는 건지, 무대가 자신을 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졌다.
"무슨 느낌이야?" — "...모르겠어. 이상하게 숨이 찼어."
민준은 눈물이 나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서 확인했다. 실제로 울고 있었다.
이유를 몰랐다. 슬픈 내용이 아니었다. 그냥 — 뭔가가 터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10년. 일하고, 먹고, 자는 10년. 그 사이에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울 일이 없었던 게 아니라, 울 수 없었던 거였다. 무대 위의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움직였을 뿐이다. 그런데 민준 안에 있던 10년이 한꺼번에 흘렀다.
예술가는 말하지 않는다. 열어줄 뿐이다.
그날 이후로 민준은 자주 공연장을 찾았다. 예술을 이해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 느낌 — 자신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다시 받고 싶어서였다.
Chapter Two
예술가란
무엇인가
보통 사람들은 감정이 와도 필터링한다. "이게 맞나?" "어색하지 않나?" "남들이 어떻게 보지?" 이 필터들이 감정을 희석시킨다. 감정은 들어오지만, 나올 때쯤엔 이미 다른 것이 되어 있다.
예술가는 그 필터가 얇거나 없는 사람이다. 세상의 감정이 왔을 때 그냥 받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걸 춤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 자기 언어로 흘려보내는 사람이다.
세상의 감정, 삶, 에너지를 누구보다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그걸 자기 언어로 흘려보내는 사람.
예술가는 특별히 태어난 게 아니다. 닫히는 과정을 거치면서도 다시 열기로 선택한 사람이다. 아니면, 닫을 수 없었던 사람이다.
Chapter Two — continued
감정의 연쇄
예술가의 역할을 이해하려면 감정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감정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흘려보내지는 것이다.
음악 창작자가 곡을 만들 때 담아낸 감정이 있다. 그 감정은 음악에 실려 공기를 통해 예술가에게 닿는다. 예술가가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 움직일 때, 그 감정은 다시 관객에게 전이된다.
정보는
머리에 닿는다
감정은
몸에 닿는다
전율은
존재에 닿는다
예술가는 원본을 복사하지 않는다. 원본을 통과한 다음, 자기 몸을 경유해 새로운 감정으로 전달한다.
서연은 동작은 완벽했다. 교수님도 기술만큼은 틀림없다고 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날 때마다 뭔가 아쉽다는 말을 들었다. 뭐가 아쉬운 건지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서연은 더 많이, 더 정확하게 했다. 표정도 더 다양하게 만들어봤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어느 날 공연이 끝나고, 관객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기술은 훌륭한데요, 보고 있으면 왜인지 외로운 느낌이 들어요."
서연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은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다음 공연을 앞두고, 서연은 처음으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 보일지가 아니라 — 무엇이 들리는지를.
음악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멜로디가 들렸다. 그 다음엔 리듬이 들렸다. 그 다음엔 — 그 안에 담긴 감정이 느껴졌다. 누군가의 외로움. 오래된 것. 오래 참은 것.
서연은 그걸 받았다. 받아서 움직였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내가 예술가라는 걸 알았다. 기술이 아니라 — 그냥 받아서 흘린 순간에.
무대가 끝나고, 처음으로 관객 중 누군가가 울고 있었다. 예술가는 자신을 지우는 순간 가장 존재한다.
두 질문에 대한 답
받아서 흘린다
왜 예술가가 존재하는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닫아버린 감정의 문을 대신 열어주기 위해. 그 문이 열리는 순간 — 사람들은 잊고 살았던 자신을 다시 만난다.
예술가란 무엇인가
세상의 감정을 필터 없이 받아 자기 언어로 흘려보내는 사람. 그 과정에서 자신을 지우고, 오히려 더 존재하게 되는 사람.
예술가는 특별히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내가 느끼는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를 찾은 사람이다.
· · ·
받아서 흘린다. 비울수록 채워진다. 사라질수록 존재한다.
받아서 흘린다
생존 본능이 닫아버린 감정의 문을 예술가는 대신 열어준다. 예술 앞에서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순간 — 그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자기 자신을 다시 만나는 순간이다.
예술가는 그 문을 여는 사람이다. 닫힌 걸 알면서도 다시 열기로 선택한 사람이다. 자신을 지울수록 더 존재하고, 비울수록 더 채워지는 사람이다.
비울수록 채워진다. 사라질수록 존재한다. 잊을수록 전달된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예술 앞에서 이유 없이 마음이 움직였던 건 언제였나요? 그 순간 당신 안의 어떤 문이 열렸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