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잘 챙긴다고 믿어왔는데, 만나고 오면 자꾸
피곤하고 외로웠다. 이유는 거절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자리는 좋았다. 오랜만에 본 사람이었고, 이야기는 이어졌고, 마지막엔 다음에 또 보자는 말까지 나왔다. 그런데 현관문을 닫고 가방을 내려놓는 순간, 등에서 무언가가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거실 전등을 켜고 앉아 한참을 멍해 있었다.
좋은 시간이었는데 왜 이렇게 피곤한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구한테 화가 난 것도 아니고, 어색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 만나고 와서 한참을 회복해야 했다.
좋은 사람이라는 자부심과, 만남 뒤마다 이불 속으로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같은 사람 안에 살고 있었다.
그 사람 때문이라면 다음에 안 보면 그만인데, 이상하게 다음 약속도 또 잡고 있었다. 뭔가 빠져 있었다.
메시지가 왔을 때 사실 마음 한쪽에서는 살짝 멈칫했다. 그날은 좀 쉬고 싶었거든. 그런데 손가락은 이미 'OK 좋아요'를 치고 있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멈칫했는데, 답장은 멈추지 않았다.
그 'OK'는 내가 한 게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 미움받기 싫은 마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마음, 거절하면 관계가 어색해질까 두려운 마음. 그것들이 대신 답한 거다. 나는 옆에서 멍하니 그걸 지켜봤을 뿐이다.
겉으로는 협조적이고 유연해 보이지만, 실은 자기 결정권을 타인에게 양도한 상태다.
그러니까 만남 뒤의 그 피로는 거절을 못 해서 생긴 게 아니다. 결정을 안 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내가 고른 게 아닌 자리에 끌려갔다 돌아왔으니, 좋은 시간이었어도 몸이 비명을 지를 수밖에.
경계라는 말이 오해받기 쉬운 이유는, 그게 차가워 보이기 때문이다. 선을 긋는다, 거리를 둔다 — 어딘가 매정한 어른의 분위기가 풍긴다. 그래서 경계를 세우려고 하면 곧장 죄책감이 따라온다. 내가 너무 매몰찼나, 차가운 사람이 된 건가.
그런데 진짜 경계는 상대를 통제하는 게 아니다. 내 반응을 정의하는 거다. 누가 어디까지 들어와도 되는지를 정하는 게 아니라, 어떤 자리에서 내가 어떤 모습일지를 내가 정하는 것.
경계는 나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건강한 관계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심리적 공간이다.
그래서 경계를 세우면 사람이 멀어지는 게 아니다. 그 자리에서 만나는 사람이 진짜 사람이 된다.
매번 같은 자리에서 망설인다. 나쁜 사람도 아니고, 좋았던 기억도 있고. 그런데 만나고 오면 며칠을 가라앉는다. 끊자니 죄책감, 안 끊자니 또 가라앉음. 그래서 이도 저도 못 하고 다음 약속을 받는다. 그럴 땐 세 줄로 점검해본다.
만남 24시간 뒤, 에너지가 회복되어 있는가.
그 사람과 있을 때 나는 평소보다 나은 버전인가.
나의 '아니오'가 정당한 반대로 받아들여지는가.
세 줄에 다 '아니오'가 붙으면, 그건 내가 약해서가 아니다. 게으름은 내 안에서 시작되고, 소모성은 구조가 무너진 거다. 끊는 결심은 그제야 게으름이 아니라 자기 보존이 된다.
혼자서도 잘 산다는 말이 외롭게 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이 없는 사람, 부르지 않으면 부르지 못하는 사람의 자기 위로처럼 들렸다. 그런데 한참 지나서 보니, 혼자 잘 사는 사람은 사람이 없어서 잘 사는 게 아니었다. 외부의 인정이 없어도 자기 자리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누구를 만나러 갈 때는, 비어 있는 자리를 채우러 가는 게 아니다. 이미 채워진 자리를 들고 가서 나누는 거다. 의존이 아닌 선택으로서의 만남. 같은 자리에 앉아 있어도, 그 시간의 결이 완전히 다르다.
잘 챙겨준다는 건 거기서 시작된다. 텅 빈 채로 상대의 기분을 주워 담는 게 아니라, 내 자리를 가지고 가서 마주 앉는 일.
사람을 잘 챙기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그게 좋은 어른의 모양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잘 챙긴다는 말 안에는 내가 빠져 있을 때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만남이 끝날 때마다 누군가 내 안에서 떠나간 듯한 피로가 남았다.
이제는 자리에 앉기 전에 한 번 더 묻는다. 이건 내가 결정한 자리인가. 'OK'라고 답한 게 진짜 나인가. 그 한 번이 만남의 결을 바꾼다. 끊을 사람과 머물 사람이 자연스럽게 갈라지고, 머무는 자리에서는 내가 비로소 같이 앉아 있다.
잘 챙겨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 자리에서 만나는 사람.
그 한 걸음이 외로움을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