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 회고
기회를 기다리지
않는 법
2013년부터 2025년까지, 기회를 탓하던 나에게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 나에게
Chapter One · 2013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어
스무 살 초반, 나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배움에 목말라 있었고, 세상을 향한 열기가 가득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봐도 그 열기를 함께 나눌 사람이 없었다. 책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사람.
당시 나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 오직 책에서만 그런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자문했다. 내가 너무 남들과 동떨어진 건 아닐까. 맞지 않는 곳에서 혼자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마음에도 없이 어울리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는 기다렸다. 언젠가 그런 사람이 나타나길. 언젠가 내가 있을 자리가 생기길.
"늘 열심히, 긍정적이며, 침착하고, 추구와 열망과 열정이 있는 —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 2013년 4월, 일기 중
Chapter Two · 2014
기회가 나에게 오지 않는다
일 년이 지났다.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주변과 비교하면 잘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답답했다. 학점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진짜 배움을 원했다. 나의 재능을 꽃피워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때의 나는 이렇게 썼다. "나는 무언가 부족하다. 내 자신이 아닌, 기회가 부족하다." 그리고 덧붙였다. "사실 핑계이기도 하지만, 주변에 그 누구도 길을 제시해주거나 가르침을 주는 기회가 없다."
"나의 재능을 꽃피워줄 사람이 있다면, 나는 정말 진심을 다해 질주할 수 있을텐데."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핑계라는 것을. 하지만 그 사실을 직면할 용기가 없었다. 기회를 탓하는 것이,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수연은 실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코드도 잘 짰고, 동료들 사이에서도 믿음직하다는 말을 들었다. 다만 한 가지 믿음이 있었다. 좋은 팀장을 만나면, 좋은 프로젝트를 맡으면, 그때 진짜 달려보겠다고.
3년이 지났다. 팀장은 바뀌었다. 프로젝트도 바뀌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이유가 생겼다. 지금 팀장은 소통이 안 된다. 이 프로젝트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기다림은 계속됐다.
"나는 환경 탓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내가 움직이지 않을 이유를 찾고 있었던 거야."
어느 날 수연은 팀장의 허락 없이 혼자 작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퇴근 후 한 시간씩. 두 달 뒤, 그 결과물이 팀 내 공유 자료가 됐다. 기회를 기다리지 않자, 기회가 보이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기회가 오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사람 앞에 기회가 나타난다.
Chapter Three · 2025
기다림을 멈추자 달라졌다
십 년이 넘게 흘렀다. 나는 더 이상 그런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런 기회를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내가 궁금한 것, 하고 싶은 것, 못하는 것, 심지어 엉뚱한 것에도 손을 뻗기 시작했다.
춤을 추면서 알게 됐다. 사소하고 뜬금없는 곳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것. 그리고 그 영감이 꼭 춤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 외면이 아니라 내면을 바꾸면, 전혀 다른 것들이 가능해진다는 것.
2025년의 나는 과거 일기를 다시 읽으며 이렇게 답장을 썼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상황도 상관없어. 난 할 수 있거든. 그 무엇이든간에 말이야. 고맙다, 과거의 나야."
"현재의 한계나 상황을 탓하지 않고, 나 혼자 헤쳐나갈 수 있어."
— 2025년 1월, 과거 일기에 남긴 답장 중
기회를 기다리지 않는 법
결국 나는 그 답을 찾는 데 십 년이 걸렸다. 기회를 기다리지 않는 법은 단 하나다. 기다리지 않는 것.
돌아보면, 기다리는 동안 나는 멈춰 있었다. 기회를 탓하는 동안, 정작 내가 변할 수 있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내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기회는 굳이 찾지 않아도 따라왔다.
기회가 없는 게 아니었다. 내가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변하자, 세상이 달라 보였다.
지금 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기다리는 동안,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 히안,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