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고독, 그리고 순수한 시선.
한 사람의 자리를 다시 들여다보며 적은 글.
1982년의 《Thriller》 앨범 안에서 그가 자기 손으로 직접 작사작곡한 곡은 세 곡이다. Wanna Be Startin' Somethin', Billie Jean, Beat It. 앨범 타이틀곡인 Thriller는 로드 템퍼턴의 손에서 나왔지만, 그 곡을 영상의 결로 다시 풀어낸 손은 마이클이었다.
그가 존 랜디스와 함께 만든 Thriller 뮤직비디오는 13분짜리 단편영화에 가까웠다. 그 영상이 나오기 전까지 뮤직비디오라는 형식은 거의 다 가수가 카메라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수준이었다. 그가 그 형식을 한 번에 넘어선 자리에서, "뮤직비디오 = 하나의 작품"이라는 어휘가 처음 생긴다.
이게 단순한 예술적 표현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음악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결이 있고, 그가 평생 안에 안고 있던 어떤 것들이 음악 한 트랙 안에 다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뮤직비디오는 그 안 들어가는 것들이 흘러나갈 수 있던 통로였다.
한 사람이 자기 안의 것을 다 풀어내려고 했을 때, 음악 한 가지로는 부족했다는 사실. 영상이라는 또 하나의 결을 자기 손으로 직접 짜야만 그제야 자기가 안고 있던 결이 일부 풀려나갔다는 사실. 그가 만든 뮤직비디오의 정교함을 자꾸 거기서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We Are The World, Heal The World 같은 곡들은 그가 만든 자선곡으로만 분류되곤 한다. 1985년에 라이오넬 리치와 함께 짠 We Are The World, 1992년에 그의 손으로 적힌 Heal The World. 표면적으로는 모금을 위한 노래들이다. 그런데 그 곡들을 만든 사람의 자리를 한 번 더 들여다보면 결이 달라진다.
무대 위에선 수백만이 그를 향해 환호하던 시간이었다. 무대 밖에선 피부색, 외모, 끝없이 늘어나는 소문들이 그를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분리시키던 시간이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자리에 서 있던 사람이 자기 일상에서는 가장 자주 혼자였다. 그가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잖아"라고 그렇게 간절하게 외친 자리는, 그 분리의 정확히 반대편이었다.
음악이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다는 그 믿음이, 정작 자기는 어디에도 연결되지 못한 사람을 버티게 해준 이유였을 수도 있다. 순수한 낭만이 아니라, 안 그러면 무너질 것 같은 사람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 곡들을 단순한 자선곡으로만 두면 그 안에 흘렀던 한 사람의 호흡이 잘려나간다. 자기가 가장 회복받지 못한 자리에서 세계라는 더 큰 단위를 향해 치유라는 단어를 꺼냈을 때, 그 단어는 그가 자기에게 먼저 건넨 말이기도 했다.
그가 유난히 어린이들 옆에 있고 싶어 했다는 사실은 자주 의심의 결로 옮겨가곤 했다. 그 자리를 한 번 다른 결로 들여다보고 싶다. 어린이는 아직 필터가 없다. 어른처럼 "저 사람 왜 저러지"라고 분석부터 시작하지 않고, 마이클을 그냥 마이클로 본다. 세상이 그를 향해 끝없이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내던 자리에서, 어린이들의 눈만은 그 시선들 바깥에 있었다.
그가 끌렸던 건 어쩌면 어린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살아 있던 어떤 시선이었을 수도 있다. 세상과 아직 타협하지 않은 시선. 그는 본인 안에서도 그 시선을 끝까지 지키려 한 사람으로 보인다. 세상이 아무리 자기를 이상하게 봐도 "근데 이게 왜 이상해?"라고 자기 눈으로 다시 한 번 되묻던 사람.
네버랜드도 같은 결로 다시 보인다. 어른들에게는 "다 큰 사람이 왜 놀이공원을"이었지만, 그에게는 세상을 탐구하는 시선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의 작업 공간이었을 수 있다. 자기 안의 그 시선을 잃지 않으려면, 그 시선이 자연스럽게 살아 있는 자리 곁에 자주 머물러야 했을 것이다.
가장 열린 마음이 가장 큰 오해를 받았다. 순수할수록 더 취약해지는 세상이었다.
이 결을 다 풀어내지 않으면, 그가 그렇게 자주 의심의 자리에 놓였던 이유의 한 결을 끝까지 못 본 채로 그를 보내게 된다. 가장 안쪽 시선을 끝까지 지키려 한 사람일수록, 세상의 회로 안에서는 가장 자주 어긋난다.
잭슨 가족 안에서 자주 다뤄지는 건 아버지와의 갈등이다. 어린 시절의 혹독한 트레이닝, 그 안에 깔려 있던 공포 같은 것. 그런데 마이클과 형제들 사이에는 그것과는 결이 다른 거리가 있었다. 잭슨 5 시절에는 다섯 형제가 함께 같은 무대 위에서 같은 박자로 살아가던 자리였다. 그러다 《Off the Wall》과 《Thriller》 이후 마이클 한 사람만 다른 차원의 자리로 옮겨간다.
형제들은 그 자리에서 각자 솔로를 시도했지만 대부분 시장의 응답을 충분히 받지는 못한다. 원래 리더의 결을 가졌던 저메인과의 사이에는 그 시기 미묘한 긴장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자주 따라붙는다. 아무도 명시적으로 싸우지 않은 자리에서, 마이클 혼자만의 비행이 형제들의 자리를 점점 더 작아지게 만드는 풍경.
아버지에게는 분노라도 할 수 있었다. 분노는 에너지였고, 적어도 거기에는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있었다. 그러나 형제들에게는 분노조차 못 했을 것이다. 같은 자리에서 같이 자란 사람들이었고, 같이 피해자였고, 같이 아팠으니까.
싸워서 생긴 거리가 아니라, 아무도 잘못 안 했는데 생긴 거리.
그게 더 설명도 안 되고, 해결도 안 되고, 그냥 안고 사는 거리다.
그가 무대 위에서 그토록 자주 폭발적이었던 건, 평소에는 거의 모든 결을 그저 감당만 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기 안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로 머물던 결들이, 결국 무대 위에서야 자기 몸을 빌려 한 번에 풀려나갔던 사람.
2000년대 초 그는 소니뮤직의 CEO 토미 모톨라를 공개적으로 "악마"라고 부른다. 한 시대의 가장 큰 아티스트가 자기 음반사의 수장을 그렇게 명명한 사건은 그 자체로 흔치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카탈로그 권리와 마케팅 방식을 둘러싼 갈등이었지만, 그 자리에는 더 깊은 결이 깔려 있었다.
마이클은 1985년에 비틀즈의 음원 저작권을 직접 사들였다. 그러다 나중에 소니가 그 카탈로그의 공동 소유에 들어오면서, 자기가 자기 손으로 사놓은 것이 다시 자기 손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감각을 그가 받았을 수 있다. 더 깊은 문제는 그가 자기 음악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는 점이다. 음반사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아티스트를 상품의 결로 관리하는 구조이고, 그는 그걸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너무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가 나중에 흑인 아티스트들이 자기 음악의 소유권을 빼앗기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외친 자리도, 같은 결의 연장선에 있다. 자기 한 사람의 문제로 두지 않고, 자기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결을 함께 끌고 가려 했던 자리.
아버지에게는 몸을 통제당했고, 음반사에게는 영혼을 통제당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평생 자기 자신의 결을 끝까지 자기 손에 두려 했던 사람이, 안과 밖에서 동시에 자기 결을 빼앗기는 자리에 자주 놓였다.
그가 그 싸움 안에서 끝까지 지키려 한 자리는 한 가지였다. 자기 음악의 결만큼은 자기 손에 두어야 한다는 것. 그게 양보되는 순간 자기 자신이 어디까지 자기인지 더 이상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한 가지 결을 끝까지 마주하지 않으면, 그를 다 본 척하기 어렵다. 유년기의 혹독한 트레이닝과 그 안에서 시작된 깊은 고립이 없었다면, 마이클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어쩌면 그저 재능 있는 한 명의 엔터테이너로 끝났을지도 모른다는 결이 자꾸 따라붙는다.
갈 곳이 없던 에너지가 결국 자기 자신 안쪽으로 파고들었던 사람이다. 친구가 될 만한 시간이 거의 없었던 호텔 방과 스튜디오의 시간들 속에서, 그는 자기 자신과 너무 오래 단둘이 있었다. 그 단둘이 있던 시간이 결국 어떤 결로 짜여 나왔는지를 우리는 안다. Thriller가 됐고, Billie Jean이 됐고, 한 무브먼트가 됐다.
여기서부터가 불편한 자리다. 우리가 그의 음악을 그토록 사랑한다는 것은, 그가 그 자리에 도달하기까지 안고 있던 고통의 결까지 어떻게든 소비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가 안에서 감당한 결과만 빼다가, 그 결과만큼만 사랑한 자리.
세상이 마이클의 고통을 소비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본인은 감당하면서, 세상은 열매만 가져간 것이다.
이 자리는 닫힌 결론으로 가져가고 싶지 않다. 고립이 천재성의 조건이었다고 단정하고 싶지도 않고, 그 고립을 그저 비극이라는 단어 안에만 가둬두고 싶지도 않다. 다만 한 사람이 안에서 견딘 무게와, 우리가 밖에서 사랑한 음악 사이의 그 비대칭만은 한 번 마주 보고 지나가고 싶다. 사랑하는 자리에는 어떤 책임이 같이 있다.
그의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본다. 아버지, 형제들, 음반사. 그 자리에 그가 정말로 편하게 자기 결을 풀어놓을 수 있던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아버지와는 평생 그 무서움이 완전히 풀린 적이 없었고, 형제들과는 아무도 잘못 안 한 거리가 그를 둘러쌌고, 음반사와는 영혼을 두고 싸우던 자리였다.
그는 예술과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마주 보려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정확히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은 그의 곁에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사랑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무거운 자리에서 그렇게 자주 들렸던 한 사람이 있었나 싶다. 그 무게 안에 진짜 그를 그대로 받아주는 사랑이 얼마나 들어 있었는지는 아무도 잘 모른다.
그가 끝까지 지키려 한 자리는 결국 한 가지였던 것 같다. 자기 세계. 음악도 자기 결로 짜고, 영상도 자기 손으로 정밀하게 다듬고, 아이들 곁에 머무는 자리도 자기 안의 시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세상의 결이 그를 향해 끝없이 다른 결로 들이닥칠 때, 그는 안쪽 한 자리만은 끝까지 자기 손에 쥐고 있으려 했다.
순수하게 살려고 했던 사람이, 순수했기 때문에 더 많이 상처받았다.
그리고 그 상처에서 나온 음악을, 우리는 지금도 듣고 있다. 한 사람이 안에서 견딘 결이 한 시대의 사운드가 되어 도착했고, 우리는 그 사운드가 도착하기까지 그가 어디서 어떻게 견뎠는지를 한참 늦게서야 짐작한다.
그는 평생 유난히 자주 아이들 옆에 있고 싶어 했다. 이 자리에서 자주 의심으로 번역됐던 그 결을, 나는 한 번 다른 결로 읽어보고 싶다. 그가 끌렸던 자리는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고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자리, 상대의 말을 열린 마음으로 받을 수 있는 자리, 그리고 묻는 일이 여전히 가능한 자리가 아니었을까.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점점 타인의 결에 자기 결을 맞추는 일에 익숙해진다. 그는 그 타협을 끝까지 자기 안에 들이지 않으려 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가 살고 싶었던 건 세상의 결에 맞춰 자기를 깎아낸 사람의 자리가 아니라, 세상을 자기 결로 그대로 마주 보는 사람의 자리였을지도 모른다. 그가 끝내 잃지 않은 건 한 시대의 사랑이나 무대 위의 정점이 아니라, 어떤 사물 앞에서도 다시 한 번 묻고 싶어 하는 자기 안의 그 작은 시선이다.
그를 한참 들여다보고 난 뒤에 내게 도착하는 건 그에 대한 답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기 시선을 어떻게 끝까지 지켰는지를 잠깐 지나와본 호흡이다. 그 호흡 하나가 내 안에 옮겨 앉는다.
어떤 사람을 다 듣는 일은, 결국 자기 안의 어떤 시선 하나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