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배움이 느려지는 진짜 이유
그리고 그것을 되돌리는 단 하나의 열쇠
두 살배기 아이가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을 본 적 있는가. 아이는 사용 설명서를 읽지 않는다. 오류가 나도 울지 않는다. 그냥 누르고, 밀고, 또 눌러본다. 두려움이 없다.
반면 대부분의 어른은 새 앱 하나를 깔면서도 '이게 맞나?', '틀리면 어쩌지?'를 반복한다. 뇌의 능력이 달라서가 아니다.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이다.
800년 전 일본 선불교 승려들이 발견하고, 현대 신경과학자들이 다시 증명하기 시작한 개념. 선입견 없이, 자존심 없이, 순수한 호기심으로 접근하는 초보자의 마음.
"초보자의 마음에는 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 스즈키 슌류
전문가의 마음에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
준혁은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서른 둘에 팀장이 됐고, 연봉도 올랐다. 주변에서 "잘 되고 있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리더십 책도 읽고, 제품 전략 강의도 들었다. 많이 보는데 뭔가 쌓이는 느낌이 없었다. 어느 일요일, 알고리즘이 던져준 영상 하나가 그냥 켜졌다.
영상이 말했다. "정보를 소비하는 것과 배우는 것은 다르다. 소비는 이해한 느낌을 준다. 배움은 내가 달라지는 것이다." 준혁은 여러 해 동안 '이해한 느낌'을 '성장'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새롭게 틀리지 않았다. 리스크 없는 인풋만 가득 쌓고, 진짜 배움의 불편함은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뇌는 효율을 좋아한다. 한 번 배운 패턴은 자동 완성 모드로 처리한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도 이미 아는 것과 매핑하려 한다. '아, 이건 예전에 하던 그거랑 비슷하겠지'라고. 그러면서 실제 구조를 놓친다.
쇼신은 이 자동 완성을 끄는 능력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에서도, 선입견 없이 처음 보는 것처럼 대하는 것. 준혁의 말이 그것을 잘 담는다.
"나는 팀장이 아니다. 지금 이 화면 앞에서 나는 그냥 첫날의 신입이다."
그 순간, 두려움 대신 호기심이 차올랐다고 했다. 신경과학자 앤드류 휴버먼 박사는 뇌의 가소성이 활성화되는 조건을 이렇게 설명한다. 집중해서, 기꺼이 실수하면서, 적극적으로 새로운 상태에 자신을 밀어 넣을 때. 쇼신이 바로 그 조건을 만족시킨다.
극도의 겸손 — "나는 아직 모른다."
절대적인 확신 — "그럼에도 결국 해낼 수 있다."
겸손은 배움의 문을 열고, 확신은 그 문을 계속 지나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열심히 배울수록 배우기가 어려워진다. 10년 경력의 개발자는 새 언어를 배울 때 완전히 처음인 사람보다 더 많이 헤맨다. 지식이 많아질수록 새로운 것이 '이미 아는 것'의 틀 안으로 자꾸 끌려들어가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이를 두고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못처럼 보인다"고 했다. 전문가의 지식은 강력한 렌즈이자, 동시에 강력한 필터다. 렌즈는 보게 하지만, 필터는 보이지 않게 한다.
준혁은 제품 전략 회의에서 늘 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후배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꺼내면, 그의 머릿속 첫 반응은 언제나 이것이었다. '우리가 예전에 왜 그걸 안 했는지 이유가 있어.'
그 이유를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기억이 탐구를 막는 순간, 전문성은 성장의 적이 된다. 쇼신은 바로 그 순간을 알아채는 감각이다.
"오래 알면 알수록, 다시 모르는 척하는 것이 더 어렵고 더 필요해진다."
— 히안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뇌가 새로운 연결을 만들고, 오래된 연결을 다시 쓰는 능력. 한때 과학자들은 이 능력이 유아기에만 작동한다고 믿었다. 성인의 뇌는 고정됐다고.
틀렸다. 뇌는 죽을 때까지 변한다. 단, 조건이 있다. 충분히 집중하고, 충분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어야 한다. 이해가 다 됐다고 느낄 때 뇌는 새 회로를 만들지 않는다. 뭔가 모른다는 감각 — 그 불편함이 뇌를 성장시키는 연료다.
① 집중 — 산만한 상태에서는 회로가 강화되지 않는다
② 혼란 — 아직 이해 안 된 것에 머물러야 한다
③ 반복 — 같은 자극이 경로를 굳힌다
쇼신은 이 세 조건을 자연스럽게 충족시킨다. 처음 보는 것처럼 접근할 때, 뇌는 다시 혼란을 허용한다. 그 혼란 속에서 새 회로가 자란다. 어른이 되어도 배움이 빠른 사람들은 대부분 혼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르는 상태를 즐기는 법을 안다.
마음가짐은 행동을 통해 훈련된다. 쇼신을 원한다고 저절로 되지 않는다. 특정 행동이 그 상태를 만들어낸다.
어떤 것을 만날 때, 바로 검색하거나 답을 찾지 않는다. 먼저 5분간 "나는 이것에 대해 무엇을 모르는가?"를 써본다. 모르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 뒤 배울 때, 정보가 뇌에 훨씬 깊이 박힌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설명해보면, 생각보다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나온다. 그 지점이 진짜 이해의 구멍이다. 쇼신은 그 구멍을 보는 눈이다.
하루 중 "아, 그거 알아"라고 느끼는 순간을 인식한다. 그 순간이 바로 자동 완성이 켜지는 순간이다. 한 박자 멈추고, 정말 아는지 다시 들어다본다. 이 작은 멈춤이 쇼신을 유지시킨다.
그로부터 반 년이 지났다. 준혁의 책상 위에는 작은 카드 하나가 붙어 있다. 손으로 직접 쓴 네 글자. 나는 모른다.
처음엔 어색했다. 팀장이 "모른다"고 적어두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어느 날 후배가 그 카드를 보고 말했다. "팀장님은 왜 저런 걸 붙여두셨어요?" 준혁은 웃으며 답했다. "항상 기억하려고."
회의에서 후배의 아이디어를 들을 때, 이제 그의 첫 반응이 달라졌다. "왜 안 되는지"보다 "어떻게 될 수 있는지"가 먼저 온다. 완전히 달라진 건 아니다. 자동 완성은 여전히 작동한다. 다만 이제 그것을 알아챈다. 알아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달라진다.
배움의 속도가 빨라졌냐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생겼다. 새로운 것이 두렵지 않다. 모르는 상태가 부끄럽지 않다. 그리고 그게 — 평생 배울 수 있는 사람의 진짜 조건이라는 걸, 이제 그는 안다.
"배움이 느려진 게 아니었다.
— 준혁
배움을 두려워하게 됐던 것이다."
쇼신은 위기가 없어도 시작할 수 있다. 특별한 계기가 없어도 된다. 그냥 지금, 이 순간에 — 모든 걸 처음인 것처럼 대하면 된다.
당신이 지금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오늘 다시 처음 보는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전문가가 되어가는 과정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전문성이 배움을 막는 감옥이 될지, 더 깊이 탐구하는 발판이 될지는 — 매 순간 쇼신을 선택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초보자의 마음에는 한계가 없다.
오직 무한한 가능성만 있을 뿐이다.
800년 전 일본의 승려들이 발견한 것을, 현대의 신경과학자들이 다시 증명했다. 그리고 준혁이 자기 책상 카드 한 장으로 실감했다.
배움이 느려지는 것은 나이 때문이 아니다. 아는 척하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모른다. 그 한 문장이 당신의 뇌를 다시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