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베어 스턴스부터
9월의 AIG까지.
2008년 위기의 시작점에는 한 단어가 있다. 모기지. 집을 사려고 은행에서 빌리는 돈이다. 보통 30년에 걸쳐 매달 조금씩 갚아 나가는, 인생에서 가장 큰 약속 중 하나.
이 거래의 전제는 단순했다. 빌린 사람은 계속 일을 하고, 집값은 시간이 지나면 더 오른다. 둘 다 맞다면 은행도 안전하고 빌린 사람도 자산이 늘어난다.
2000년대 미국엔 그 전제 위에 한 가지 분위기가 더 깔렸다. "집을 사면 무조건 이긴다."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자산이라는 믿음. 이 한 줄이 이후 모든 거래를 떠받쳤다.
서브프라임은 신용이 약한 사람에게 빌려준 모기지를 말한다. 보통은 돈을 잘 못 갚을 것 같다고 판단해 거절했을 사람들. 그런데 이들에게도 집을 사주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 금리를 더 높게 받는다.
2000년대 중반 이 대출이 폭발적으로 풀렸다. 은행 입장에선 위험해 보였지만 한 가지 가정 위에서는 안전했다. 집값이 계속 오른다는 가정.
못 갚으면 집을 압류해 팔면 된다. 집값은 계속 오르니 손해 볼 일이 없다. 이 한 줄이 위험을 감춰두었다.
은행은 위험한 모기지를 그냥 들고 있지 않았다. 잘게 쪼개 다른 빚과 섞은 뒤 다시 묶어 새 상품으로 팔았다. 이게 CDO다. 마치 여러 종류의 과일을 섞어 만든 잼처럼, 어떤 과일이 상해도 다른 게 살리니 안전해 보이게 포장된 것.
거기에 보험까지 끼워졌다. CDS — "혹시 이 빚이 떼이면 우리가 대신 갚아줄게"라는 약속을 사고파는 시장이다.
그 결과 진짜 위험을 누가 들고 있는지 보이지 않게 됐다. 한 채의 부실한 집이 여러 장부를 거치며 다른 이름의 자산으로 변신했다.
Too Big To Fail. 너무 커서 망할 수 없다는 뜻이다. 큰 은행이 무너지면 경제 전체가 흔들리니, 정부가 어떻게든 살릴 거라는 암묵적 신화.
이 믿음은 위험을 더 크게 만들었다. 잃어도 세금이 막아주고, 따면 보너스가 떨어진다. 비대칭 게임이다. 위험을 더 떠안을수록 더 많이 벌었다.
잃으면 시스템이 책임지고, 따면 내가 가져간다. 균열은 그렇게 자랐다.
집값은 오르고, 보험은 풍부하고, 정부는 받쳐줄 거라는 세 겹의 가정. 그 위에서 시스템은 조용히 임계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베어 스턴스는 1923년 설립된 미국 5대 투자은행 중 하나였다. 80년 넘게 살아남은 이름. 2008년 3월 어느 주, 그곳이 사흘 만에 사라졌다.
결정타는 손실이 아니라 자금이었다. 베어는 매일 단기로 돈을 빌려 굴리는 구조였다. "베어가 위험하다"는 소문이 돌자 그 다음 날부터 아무도 빌려주지 않았다. 사흘 만에 자금이 다 빠져나갔다.
연준이 개입했다. JP모건이 헐값에 인수하고 정부가 보증을 섰다. 한 회사의 구제처럼 보였지만 진짜 신호는 다른 곳에 있었다. 큰 은행도 사흘이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 첫 번째 균열이었다.
반년 뒤 리먼 브라더스. 1850년 설립, 158년 된 4대 투자은행. 베어보다 컸고 글로벌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9월 15일, 파산을 신청했다.
이번엔 정부가 손을 내밀지 않았다. 명분은 "도덕적 해이를 끊겠다"는 것. 매번 살려주면 시장은 같은 사고를 다시 만들 거라는 논리.
그러나 그 결정 뒤엔 명분만 있지 않았다. 시간이 부족했고, 인수자를 못 찾았으며, "이번엔 시장이 견뎌낼 거다"라는 짐작이 깔려 있었다. 한 사건의 무게가 그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몰락은 단발이 아니라 누적의 시작이었다.
리먼 파산 이틀 뒤, 세계 최대 보험사 AIG가 흔들렸다. 표면적으론 자동차·생명보험 회사였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CDS — 그 "빚을 못 갚으면 대신 갚는 보험" — 을 가장 많이 팔아온 회사였다.
전 세계 은행들이 AIG의 보험을 믿고 위험한 자산을 떠안고 있었다. AIG가 무너지면 그 보험을 들고 있던 모든 은행의 장부에서 동시에 자산 가치가 사라진다.
한 보험사가 글로벌 금융망의 동맥 한복판에 있었다. 연결고리가 협착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리먼은 끊었지만 AIG는 살렸다. 한쪽은 끊을 수 있는 도미노였고, 한쪽은 그 뒤에 줄지어 있는 수많은 도미노 때문에 끊을 수 없었다.
그 6개월 동안 시스템이 정말 굴러간 자리는 회의실의 공식 문서가 아니었다. 한밤의 통화, 호텔 라운지, 도쿄와 워싱턴 사이의 비공식 자리들이었다.
모건스탠리는 도쿄에서 미쓰비시UFJ와 협상했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구제금융 법안을 흥정했고, 각국 재무장관들은 공식 채널 밖에서 서로의 패를 보여주었다.
공식 계약이 마비된 자리에서 시스템을 잇는 자원은 신뢰였다. 그 자리에서 신뢰는 감정이 아니라 자본이었다 — 측정되고 교환되고 거래의 단위로 놓이는.
공통의 위기의식, 정확한 정보를 빠르게 줄 수 있는 능력, 평소 쌓아둔 인간적 관계. 이 셋이 그 자리의 통화였다.
머니마켓은 은행과 큰 회사들이 하루·일주일 단위로 잠깐씩 돈을 빌려주는 시장이다. 비유하자면 돈의 산소 같은 곳. 보통 가장 안전한 자리로 여겨진다 — 짧으니까, 떼일 위험이 거의 없다고들 했다.
리먼 파산 직후 머니마켓 펀드 한 곳에서 손실이 났다. 1달러를 넣으면 1달러를 받는 게 당연했던 자리에서, 그 1달러가 깨졌다. 영어로 "Breaking the buck."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곳에서 손실이 났다. 그 한 줄에 단기 자금 시장 전체가 정지했다.
시스템이 정말 멈춘 순간은 자산이 사라진 순간이 아니다. 서로를 못 믿게 된 순간이다. 어제까지 돈을 빌려주던 은행들이 오늘은 상대의 장부를 의심했다.
"Cash is King"이라는 말이 그때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때 증명되었다. 모두가 현금을 쥐고 아무도 빌려주지 않으니 거래가 멈춘다. 한국과 러시아 같은 신흥국에서도 외화가 빠져나갔다.
자산이 통째로 사라진 게 아니다. 자산을 평가할 수 있는 신뢰가 사라졌다. 신용은 결국 신뢰의 다른 이름이라는 진실이 가장 비싼 청구서로 돌아왔다.
위기가 지나간 뒤 더 깊은 질문이 남았다. 위험을 본 사람이 분명 있었는데, 왜 그토록 많은 전문가가 멈추지 못했는가.
세 겹의 장벽이 있었다. 첫째는 심리. 자기 모델이 작동한다고 믿는 사람은 반대 신호를 잡음으로 처리한다. 확증 편향과 손실 회피.
둘째는 조직. 정보를 공개하면 시장이 흔들리고 자신의 자리도 흔들린다. 그래서 정보는 분절된 채 각자의 책상에만 머물렀다.
셋째는 이해관계. 단기 보너스, 다음 분기, 다음 선거. 위기를 방치하는 쪽이 단기 보상이 더 컸다. 아는 것과 멈추는 것 사이엔 늘 이 세 겹이 있었다.
청문회가 열렸고, 두꺼운 보고서가 쌓였고, 2010년에는 도드프랭크법 — 큰 은행을 더 강하게 감독하기 위한 새 규제 — 이 만들어졌다. 구제금융은 시간이 지나며 상당 부분 회수됐다.
그러나 같은 패턴은 다른 형태로 다시 등장했다. 2020년 코로나 충격, 그 뒤 금리 급등기, 2023년 미국 지방은행 위기.
시스템은 진보한다. 규제는 더 촘촘해지고 자본은 더 두터워진다. 그러나 같은 인간이 같은 인지 함정을 다시 만든다 — 다음의 "이번엔 다르다"라는 한 줄로.
2008년의 6개월은 단번에 무너진 사건처럼 기억되지만, 자세히 보면 단번이 아니다. 수년 동안 쌓인 레버리지, 약해진 평가 기준, 미루어둔 의심이 같은 시기에 한꺼번에 터진 것에 가깝다.
거대한 시스템은 갑자기 무너지지 않는다.
누적이 임계점을 넘는 그 한순간에, 비로소 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