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0으로 만드는 게 성숙한 게 아니었다
사람들과 잘 지냈다. 분위기를 읽는 편이었고, 대화가 어색해지면 자연스럽게 채웠다. 누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먼저 알아챘고, 자리가 불편해지기 전에 먼저 맞췄다. 나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좋았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고, 그게 기분 좋았다.
근데 이상한 일들이 가끔 있었다. 분명히 내가 먼저 양보했는데, 어느 순간 그게 당연해져 있었다. 내가 맞춰줬던 건데, 나중엔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 된 것처럼 됐다. 싫다고 말할 타이밍을 놓쳤고, 그러다 보니 계속 그 역할을 했다.
그리고 뭔가 어긋나는 일이 생기면, 나는 항상 제일 먼저 나를 돌아봤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말을 잘못한 건가.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상대가 화가 난 것 같으면 이유를 찾기 전에 일단 미안해졌다.
아니었다. 나는 반성을 한 게 아니었다. 그냥 — 습관적으로 내가 틀렸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따져보지 않았는데.
오래도록 나는 평온한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갈등이 없고, 힘들지 않고, 누군가 불편하지 않은 상태. 조용하고 매끄러운 상태.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도덕적으로도, 관계에서도, 삶에서도 — 0에 가까운 상태가 정답인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감정에는 +도 있고 -도 있다. 기쁨도 있고 화도 있고 슬픔도 있고 욕심도 있다. 그게 나쁜 게 아니다. 그냥 — 살아있다는 거다. +와 -는 서로 다른 거지, 둘 중 하나가 틀린 게 아니다.
"0은 평온한 게 아니다. 내가 없는 거다."
내 기분도, 내 욕구도, 내 반응도. 전부 눌러놓은 채로 매끄럽게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 마음 깊은 곳에서 뭔가 계속 부족하다. 이유를 모르겠는데 채워지지 않는 느낌. 그건 내가 없어서다. 세상은 계속 돌아갔는데, 그 안에 내가 없었던 거다.
이걸 읽는 당신이 나랑 비슷하다면. 착하게 살아온 걸 후회하라는 게 아니다. 사람들한테 잘 해온 걸 그만하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 0이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불편한 감정이 와도 괜찮다. 화가 나도 괜찮고, 욕심이 생겨도 괜찮고, 싫다는 말을 하고 싶어도 괜찮다. 그게 나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그냥 — 내가 있다는 거다.
이제는 +도 -도 내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평온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게 내가 살아있다는 거니까.
정확히는 — 나를 0으로 만들어놓고, 그게 맞는 거라고 믿어온 게 지겨워진 거다.
분명히 내가 먼저 양보했는데 그게 당연해지고, 싫다고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뭔가 어긋나면 먼저 나를 돌아보던 것들. 성숙한 거라고 생각했다.
살아있다는 건 평온하지 않다는 거다.
쉽지 않다. 다채롭고, 때로는 힘들다.
그게 나다.
이제는 +도 -도 전부 내 거다.